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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칭의 힘은 강하다 덧글 0 | 조회 811 | 2015-03-09 12:37:31
조영미  

예전에 한 여성 연예인이 주민등록 나이보다 한참 낮은 나이를 밝혀 문제가 된 적이 있었다. 사실이 확인된 후 그녀가 했던 통한 어린 언론 인터뷰가 기억에 남는다. 인기를 위해 나이를 속이긴 했는데, 분장실에선 화가 치밀어 오른 적이 많았다는 것. 자신보다 나이 어린 후배들이 맞먹고, 심지어 어리다고 반말을 할 때마다 ‘내가 언니인데’하는 말을 하고 싶은 맘이 굴뚝같았다는 내용이었다.

 

 

우리말의 호칭은 참 다양하다. 그 호칭을 통해 상대의 존재감, 위상이 그대로 드러난다. 그러기에 우리는 상대가 나를 부르는 호칭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호칭 하면 늘 떠오르는 경험담이 있다.

 

예전에 내가 신문사에서 일할 때의 일이다. 신문사는 직급이 다양하지 않아 평기자·차장·부장·국장 정도밖에 없다. 그러다 보니 같은 직급에선 입사 연차에 따라 “선배” “후배”로 부르는 게 보통이다. 문제는 남자기자 후배와 여자기자 선배 간의 미묘함에서 발생했다. 남자는 군대 갔다오고, 재수해 나이가 늙수그레(?)한 데 비해 나는 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신문사로 직행해 신문사 밥을 먹은 지 몇 년, 당연히 경력면에서 남자기자의 선배였다.

 

하지만 그 남자기자는 나이가 먹었다는 오기에 대강 호칭을 생략하며 두루뭉술 넘어갔다. 평상시 대화는 안 하면 그만이지만, 문제는 사무실로 전화가 걸려올 때였다. 전화가 왔다고 알려야 하는데 남자기자가 선배란 호칭을 뗀 채 이름을 불러 버린 것. 화가 난 나는 옥상으로 불러 올려 주의를 줬지만 결국 그 이후로 그와의 관계는 더 악화되고 말았다.

 

우리가 의식하든 의식하지 않든 호칭은 우리 사회 가치관의 지표다. 예전엔 모르는 남자행인을 “선생님” 하고 불렀지만 요즘은 “사장님”이라고 부르지 않는가. 예전엔 먼저 태어난 것으로 표현되는 학식을 중요시했지만, 점차 자본주의적 가치관이 자리 잡으면서 호칭도 변한 것이 아닐까. 요컨대 호칭만 잘 불러도 인간관계를 부드럽게 할 수 있다.

 

우선 상대의 의사를 물어보라.

 

사회생활을 하며 질문의 힘은 곳곳에서 실감하는데 호칭 역시 예외는 아니다. 지레 맘대로 불렀다가는 본인은 나름대로 신경 썼는데도 상대의 기분을 상하게 할 수 있다.

 

혼다그룹의 혼다 소이치로는 부하직원들이 “사장”이라 부르는 것을 싫어했다고 한다. 그보다는 구멍가게 같은 조그만 업체에서 친근감을 담아 붙이던 “오야지(おやじ·親父)”란 호칭을 선호했다. 호칭은 부르는 사람도 편해야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상대방의 맘이다. 상대가 좋아하는 호칭을 불러 주라.

 

둘째, 덤 듬뿍 작전을 쓰라.

 

택시나 버스를 탔을 때 “아저씨” 하고 부르는 것과 “기사님” 하고 부를 때의 차이점을 느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또 승진을 했는데도 자신의 입에 젖었다는 이유만으로 꼭 예전의 직급을 호칭으로 사용하는 이가 있다. 가령 전무로 승진했는데 예전에 상무일 때 모셨다고 자꾸 그 시절 호칭을 사용한다면? 당신은 둔감함을 넘어, 저의까지 의심받을지도 모른다. 은퇴한 분이라면 그분이 현직에 있을 때 올랐던 최고의 지위에 준해 호칭을 부르라. 인심 좋은 호칭이 인간관계에 행운을 불러온다.

 

셋째, 호칭에 친밀함을 담아라.

 

내가 모 중년 여배우를 인터뷰할 때 일이다. 그녀는 자신과 친한 노년 여배우를 칭하며 이렇게 말했다. “제가 형님이라고 부르는 분은 P밖에 안 계십니다. P는 그만큼 제가 존경하며 따르는 분이랍니다.”

모두에게 덥석덥석 형님, 언니 하며 엉기는 것은 꼴불견이다. 하지만 자신의 이너서클(inner circle) 멤버라면 호칭을 차별화해 친밀함을 담을 필요가 있다. 남과 다르게 특별 대우받는 것을 느낀 상대 역시 당신을 특별하게 대할 것이다.

 

친밀도가 호칭을 통해 적절히 표현될 때 한 울타리 사람으로 한층 가깝게 느껴질 수 있다.

자, 단순한 호칭에도 이처럼 복잡미묘한 인간심리가 자리하고 있다. 잊지 마시라. 호칭의 강력한 힘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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